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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과 언론자유는 양립할 수 없다 본문

쓰다

방송'국'과 언론자유는 양립할 수 없다

은혜 Graco 2016. 6. 30. 21:45

재작년(2014년 5월 18일)에 이런 글을 썼더랬다. 

그리고 2년 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압박과 회유가 뒤섞인 음성이 공개되었다. 

http://m.news.naver.com/read.nhn?sid1=102&oid=032&aid=0002710775  




방송'국'과 언론자유는 양립할 수 없다



방송국이 옳은 표현이냐, 방송사가 옳은 표현이냐

 

대학 때 들었던 한 언론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던진 질문이다. 학생들에게 손을 들게 했고, 나는 방송사에 한 표를 던졌다. 이 질문의 맥락은 이렇다. 방송국은 방송언론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못했던 군사정권의 잔재이며, 방송사는 그러한 과거와 단절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보다 중립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부기관의 하나인 방송국이 아니라 독립적인 경영권과 편집권을 가진 방송사다라는 선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청률과 광고수주에 매여 있는 일개 기업일지언정 정권의 스피커 노릇은 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노선이자, 방송언론의 마지막 자존심이다.[각주:1]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방송언론의 보도행태 논란은 수신료 정상화를 외치던 공영방송의 몰락으로 정점을 찍었다. 노조가 보도국장의 발언을 고발했고, 사장이 고발당한 보도국장에게 사퇴를 종용했으며, 결국 사퇴한 보도국장은 자신의 거취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건 보도 전반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고 고발했다. 사람들은 사건의 발단인 보도국장의 몰상식한 발언에 분노하고 있지만, 사실 정말로 분노해야할 지점은 따로 있다. 한 사람의 발언은, 특히 미디어(문자 그대로 매개’)를 거치면 그것을 받아 적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 받아 적은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변주왜곡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라쇼몽 효과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논의의 초점을 그 말의 진의를 캐묻고 날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느 부분에 있었는지를 따지는 진실게임보다는 다른 곳으로 옮겨야 더 생산적이고 현명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 삼아햐 하는 것은 이른바 ‘외압’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시점과 방식이다. 보도국장은 사퇴 압박을 받고서야 사장을 통해 보도 전반에 행사되었던 청와대의 압력을 실토했다. 정말 이상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보도국장에게 이 사실을 왜 진작 폭로하지 않았냐고, 왜 동료들과 함께 방송언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지 않고 한낱 ‘방송국’으로 전락했냐고 묻고 싶다. 



KBS 노조의 기자회견 장면 (2014517)



프리덤 하우스의 언론자유도 발표를 다룬 JTBC <썰전>의 한 장면 (2014년 5월 15



‘하드코어 뉴스깨기’를 표방하는 <썰전>에서는 프리덤 하우스가 발표한 언론자유 순위를 언급하며 한국이 칠레나 가나보다 낮다고 혀를 찼다. ‘칠레보다’, ‘가나보다’라는 기준은 좀 의아하지만[각주:2] 안타까운 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언론자유도라는 것이 ‘외압을 겪지 않음’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외압을 견디고 이겨냄’에 기초한다는 사실이다. 외압의 부재는 사실상 이데아다. 언론 현실에는 수많은 외압이 존재하며, 그 종류는 다양하다. 세월호 사건 보도에서처럼 정부의 보도지침 때문에 ‘이것이 최선이다’를 반복하는 것도, 광고가 끊길까봐 대기업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도, (보도 분야는 아니지만) 여론에 밀려서 드라마의 결말이 바뀌는 것도 다 외압에 굴복한 것이다. 결국 ‘권력의 압력’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환경이냐, 권력과 동등한 위치에서 힘겨루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냐의 차이다. 그래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외압과 겨룰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그러나 사실은 초창기부터) 차별화된 접근으로 JTBC <뉴스9>이 주목을 받으면서, JTBC 보도국의 기본 컨셉트를 잘 보여주는 미드 <뉴스룸>이 재조명되었다.[각주:3] 가상의 뉴스채널인 ACN의 보도담당사장 찰리 스키너는 매너리즘과 히스테리에 쩔어 있던 간판 앵커 윌 매커보이에게 ‘머로우가 매카시즘을 끝냈고, 크론카이트가 베트남전을 끝냈다’며 용기를 불어넣는다. 살짝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목이지만, 이 말이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 갖는 함의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언론자유라는 것은 머로우나 크론카이트나 손석희가 많아지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숱한 투쟁 끝에 얻어지는 것이라는 점, 프리덤 하우스가 초록색으로 표시한 (<뉴스룸>의 배경인 미국을 포함한) 이른바 ‘언론자유국’들은 이미 장구한 투쟁의 전통(언론자유뿐만 아니라 시민권, 참정권, 파업권 등을 위한 투쟁)을 갖고 있다는 점, 한국이 노란색 ‘부분자유국’인 것은 ‘미개’해서가 아니라 투쟁에 나서길 주저하기 때문이라는 점 등.



BP 멕시코만 석유 유출 사건을 다룬 미드 <뉴스룸> 시즌 1 첫 화의 한 장면

조정실에서 책임프로듀서가 앵커의 공세적인 인터뷰를 모니터하고 있다



JTBC <뉴스9>의 한 장면. 세월호 전직 선원을 인터뷰하고 온 기자가 스튜디오에 직접 나와 브리핑을 하던 중, 앵커가 다른 제보자와의 크로스체크 여부를 질문하고 있다. 녹화 영상과 스튜디오 브리핑을 합쳐 이 뉴스 꼭지에 약 7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2014420일) 생방송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앵커의 돌발질문에 기자들이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미드 <뉴스룸>의 가상 뉴스채널 ACN ‘뉴스 나이트의 앵커 윌 맥커보이와 보도담당사장 찰리 스키너다소 극적으로(?) 정치적 커밍아웃을 한 후 홍역을 치른 윌에게 찰리는 앵커가 스탠스를 갖는 건 새로울 게 없는 일이다머로우가 매카시즘을 끝냈고크론카이트가 베트남전을 끝냈다고 격려한다. (JTBC의 경우는 이 두 역할을 손석희가 겸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찰리는 윌의 뉴스룸이 이리저리 치일 때마다 쿠션역할을 하는 이상적인 캐릭터이다찰리 스키너를 한국방송으로!



결국 ‘투쟁만이 살 길’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결론에 도달했지만, 이것은 우리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 나가느냐에 따라 전혀 상투적이지 않은 결말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에게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보도해줄 언론이 없어서 외신에 의지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외압으로 백지가 되어버린 광고지면에 광고신청 전화번호를 인쇄하면서까지 진실을 보도했던 신문이 있었고,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6월 항쟁을 충실히 보도했던 언론인들의 결사체가 있었으며,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여의도를 수놓았던 촛불들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투쟁은 과거와 다르다. 명문대를 나온 의식 있는 언론엘리트들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는 지났다. 언론인들은 권위 있는 통신사의 속보보다 SNS 한 줄에서 더 빠르게 더 많은 소스를 얻고 있고, 수많은 댓글과 멘션과 RT가 후속보도를 제공한다. 제 몫을 해내는 언론에는 제보와 출연이 끊이지 않는다. 이때 방송사는 추한 경쟁과 눈치작전 없이 투명하게 단독보도 타이틀을 얻게 되고, 제보자는 더 이상 ‘피해자’나 ‘약자’로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 강한 사람으로 당당히 서게 된다. 발신자와 수신자의 구분이 희미해져가는 오늘날 어쩌면 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우리 모두가 언론인인 셈이다. 직업언론인이든, 제보자든, 시청자든, 트위터리안이든, 희박한 언론자유 속에 놓여 있는 우리 모두에게는 자긍하되 자위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좀 전에 뉴스를 잘 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그러기로 결심했으니까.’ 찰리 스키너의 말처럼 뉴스를 잘 하기로 결심하고 고군분투해 나가던 어느 날, 우리의 언론자유는 큰 걸음을 떼고 있을 것이다. 


* 사족 : 방송언론이 국가권력에 유독 취약한 것은 '전파는 공공재'라는 원리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언론정의구현'이라는 목표를 넘어 전파라는 공공재를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양자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고민을 구체화시키는 것을 다음 과제로 염두에 두어야겠다.


 



  1. 같은 미디어 분야인 광고홍보 종사자들이 광고를 ‘선전’이라고 부르는 것에 질색하는 것도, ‘우리가 상업광고를 모태로 하는 자본주의의 첨병일지언정 단순히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세뇌시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더 나아가 유의미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방점을 찍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하겠다. [본문으로]
  2. 첫째는 한국이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민주적인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는 상대적으로 높은 언론자유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3. 미드 <뉴스룸>의 가상 뉴스쇼 ‘뉴스나이트’와 JTBC <뉴스9>이 공유하는 기본 컨셉트는 ‘법정’이다. 미리 녹화해둔 취재 영상을 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인물을 (직접 출연이든 화상/음성 연결이든) 뉴스쇼로 ‘소환’하여 ‘심문’하는 형식이다. 주요 뉴스의 경우 기자 역시 실시간으로 보도를 하는데, 이때 앵커는 기자의 보도내용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보조멘트를 날리는 것이 아니라 보도의 빈틈을 건드리고 기자는 이를 보완하여 앵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보도의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컨셉트는 덴마크 정치 드라마 <여총리 비르기트>에서도 볼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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