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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의 고독 - <김수영 전집 2 산문> 본문

베끼다

번역자의 고독 - <김수영 전집 2 산문>

은혜 Graco 2017. 7. 7. 17:19


번역자의 고독 | 김수영

 


번역을 부업으로 삼은 지가 어언간 10년이 넘는다. 일본의 불문학자 요시에 타카마츠[吉江喬松]는 제자였던 고마츠 기요시[小松清]를 보고, 번역을 하는 사람은 10년 안에는 단행본 번역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호령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분에 넘치는 단행본 번역을 벌써 여러 권 해먹었다.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와는 번역만 하더라도 비교가 안 되고, 나는 무슨 영문학자도 불문학자고 아니니까 번역가라는 자격조차 없고, 도대체 비난의 대상조차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수지도 맞지 않는 구걸 번역을 하면서 나의 파렴치를 이러한 지나친 겸허감으로 호도해 왔다.

 

한번은 ‘Who’s Who’<누구의 누구>라고 번역한 웃지 못할 미스를 저지른 일이 있었고, 이 책이 모 대학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담당 선생한테 부랴부랴 변명의 편지까지도 띄운 일이 있었다.

 

그 책은 재판이 되었는데도 출판사에서 정정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리 너절한 번역사이지만 재판이 나오게 되면 사전에 재판이 나온다고 한마디쯤 알려주었다면 아무리 게으른 나의 성품에라도 그런 정도의 창피한 오역은 고칠 수 있었을 터인데, 우리나라 출판사는 그만한 여유조차 없는 모양이다. 나는 또 나대로 한 장에 30원씩 받고 하는 청부 번역번역책의 레퍼토리 선정은 물론 완전히 출판사 측에 있다이니 재판 교정까지 맡겠다고 필요이상의 충성을 보일 수도 없다. 그러면 나보다 출판사 측이 더 싫어하는 것만 같은 눈치이고 자칫 잘못하면 비웃음까지 살 우려가 있다. 그러나 재판이 나와도 역자가 이것을 대하는 심정은 마치 범인이 범행한 흉기를 볼 때와 같은 기분나쁜 냉담감뿐이다.

 

그래도 나는 얼마 전까지는 내 딴에는 열심히 일은 해주었다. 비록 선택권이 나한테 없는 뜨내기 원고라도 나의 정성을 다 바쳐서 일을 했다. 나의 재산은 정성뿐이었다. 남보다 일이 더디고 남보다 아는 것은 없지만 나에게는 정성만은 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그 자부마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원고를 다 쓰고 난 뒤에 반드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읽고 또 읽고 했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에는 붓만 떼면 그만이다. 한 번도 더 안 읽는다. 더 읽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구태여 읽지 않고 그냥 출판사로 가지고 간다. 이런 버릇은 번역일에만 한한 것이 아니다. 모든 원고가 다 그렇다. 틀려도 그만, 안 틀려도 그만, 잘돼도 그만, 잘못돼도 그만이다. 아니, 오히려 틀리기를 바라고 잘못되기를 바라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일전에 D신문의 <시단평>을 통해서 나는 <한국의 현대시에 대한 나의 답변은 한마디로 말해서 모르겠다!’ 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글을 보고 모 소설가가 <모르겠다고 해서야 쓰겠나, 잘 키워가도록 해야지>라는 말을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이 소설가는 이 글을 보면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자포자기가 돼서야 쓰나, 아무리 보수가 적은 번역일이라도 끝까지 정성을 잃지 말아야지>라고. 나는 그를 평소부터 소설가라기보다는 학교교사로 보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더욱 그 감이 심해졌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고급 <속물>이 참 많다.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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