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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Scope]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계속 돌아야 한다: KBS의 푸티지 도용이 남긴 과제 (2017/06/17) 본문

쟁이다

[DMZ Scope]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계속 돌아야 한다: KBS의 푸티지 도용이 남긴 과제 (2017/06/17)

은혜 Graco 2018. 4. 23. 17:14

http://dmzdocs.com/archives/11095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는 계속 돌아야 한다:
KBS의 푸티지 도용이 남긴 과제


은혜 시민에디터

 

공영방송 KBS의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추적 60분>은 지난 4월 12일,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순간에서 육상거치에 성공하기까지 3주간의 인양과정을 기록하고, 이 과정에서 드러난 허점들과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아홉 명의 수색작업과 진상규명을 위해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는 기획의도 하에 ‘세월호, 1,091일만의 귀환’ 편을 방영했다. 이날의 방송은 이후 소셜미디어 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 방송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나 그에 대한 감상 때문이 아니라 제작진의 비상식적인 행동 때문이었다.


사전협의 및 출처표기 없이 도용된 푸티지의 방송화면

문제제기 후 출처표기가 반영된 다시보기 화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추적 60분> 제작진이 세월호 방송을 앞두고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이하 미디어위)에 자료제공협조를 요청했고, 요청을 받은 미디어위는 상대방의 자료제공 원칙을 그대로 되돌려 적용하는 ‘1대1 원칙’을 밝혔다. [주1] 그런데 <추적 60분> 제작진은 이 조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미디어위의 푸티지를 출처표기도 없이 도용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제작진은 곧바로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주2] 촉박한 제작일정 때문이었다는 해명과 사후약방문 식의 사용료 지불 약속 그리고 더욱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실체 없는 다짐은 어떠한 해결도 낳지 못했다. 이 부실한 사과문에 대해 미디어위는 4.16연대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게재했다. [주3] 미디어위는 이 입장문을 통해 (1) 시사교양국장 명의의 사과문, (2) 도용 재발방지를 위한 자료사용수칙 수립 및 공개 게재, (3) 사용료가 아닌배상, (4) 수정된 사과문의 공식 제출 및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재를 요구했다.


해당 회차의 다시보기 페이지

‘추적60분’ 제작진과 나눈 페북 메시지

이 사건의 경위와 그간 공영방송이 보여온 무례한 태도를 낱낱이 고발한 미디어활동가의 페이스북 게시물 [주4] 은 2천 건 이상의 ‘좋아요’와 8백 건 이상의 ‘공유’를 받으며 소셜미디어를 달구었지만, 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보도는 극히 드물다. 이 사건에 대한 여론 또한 거대 언론의 갑질 또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공분에 머물고 있다. 명백히 이 사건은 직업언론인들이 만드는 대자본 저널리즘 다큐와 활동가들이 만드는 독립 액티비즘 다큐의 역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KBS PD들과 4.16연대 미디어위 감독들의 관계는 일반적인 의미의 ‘갑을관계’(가령 원청기업으로서의 방송사와 하청기업으로서의 외주제작사)가 아니며, 여기서 작동하는 권력은 훨씬 미시적이고 교묘하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려진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그동안 방송사 PD나 기자들이 (그리고 때로는 외주제작사들도) 사회적 영향력과 파급력이라는 방송매체의 권위뿐 아니라 미디어활동가들의 특수한 입장을 악용해왔다는 점이다. 그 특수한 입장이란 바로 활동가들의 뚜렷한 목적의식이다. 독립 다큐 중에서도 액티비즘 다큐는 ‘작품을 통해 그 주제를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킨다’는 목적을 띠기 때문에, 방송사 제작진의 부당한 요구와 무례한 태도(“우리가 다뤄주는 게 어디냐”)를 활동가들이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운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야”)이다. 방송사 제작진은 이 약한 부분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기사 한 줄, 뉴스 한 장면이 절실한 투쟁당사자들과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근거리에서 기록하고 있는 미디어활동가들의 처지를 비열한 방식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장 먼저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방법은 저작권 강화일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이 공분을 산 지점은 저작권에 대한 거대 방송사의 이중적인 태도, 즉 자신의 저작권은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타인의 저작권은 무시하는 태도에 있다.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은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협의를 마무리 짓지 않은 상태에서 출처조차 밝히지 않은 채 영상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를 저작권 용어로 환언하면 전자는 저작재산권 침해에, 후자는 저작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 [주5]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사건은 영상물 저작권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데, 가장 현명한 접근법은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을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이다. 저작권은 한편으로는 창작자의 명예와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상호참조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저작인격권은 창작자 본인의 것이지만, 저작재산권은 경우에 따라 창작자 본인이 아니라 제작사나 배급사에 귀속되기도 한다. 따라서 저작인격권은 배타적으로, 저작재산권은 포용적으로 운용하는 전략이 가장 이상적이다. 저작권법이나 등가교환에 의탁하는 대신 창작자들 간의 상호존중과 연대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다큐멘터리 신을 더욱 풍요롭고 활발하게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위가 내걸고 있는 1대1 원칙은 소속 활동가들의 쓰라린 경험과 지난한 고뇌의 산물이다. 이 원칙은 제도권 방송사로부터 외면 받을지는 몰라도, 비제도권 미디어들이 돈독한 신뢰와 협력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가령 뉴스타파, 고발뉴스 등과의 상호무상제공) 미디어위가 입장문을 통해 국장급 사과문과 전사적 차원의 매뉴얼 수립을 요구한 것 역시 실현 여부를 떠나 매우 건설적인 대응이다. 아무리 ‘선의’를 가진 PD라도 상사나 조직의 결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직업언론인의 현실이며, 그들이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저작재산권도 실은 제작진 개개인이 아니라 방송사에 있기 때문이다. [주6]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액티비즘 다큐의 카메라는 오늘도 전국 각지의 투쟁현장에서 쉼 없이 돌고 있다. 그리고 시의적절한 뉴스를 생산해야 하는 방송사는 앞으로도 예의 무례한 태도로 자료를 ‘요청’해올 것이고, 그러다 너무 바쁜 어느 날 푸티지를 무단으로 사용하고서 사후에 사과문을 올릴지 모른다. 바라건대, 이번 사건에서 4.16연대 미디어위원회가 보여준 성숙한 대응을 시작으로 한국 다큐멘터리의 생태계가 바뀌길 기대해본다. ‘다큐 만들기’ 또는 ‘영상으로 기록하기’라는 사회적 활동을 부당한 요구로부터 방어하는 동시에 자유롭고 생산적인 상호협력의 전통을 확립할 실험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주1] 예컨대 상대방이 10초당 10만원의 유상제공을 원칙으로 할 경우에는 미디어위도 10초당 10만원에 자신의 자료를 제공하고, 상대방이 출처표기를 조건으로 한 무상제공을 원칙으로 할 경우에는 미디어위 역시 상대 기관에 동일한 조건으로 무상제공하는 식이다.


[주2] http://www.kbs.co.kr/2tv/sisa/chu60/notice/index.html


[주3] http://416act.net/index.php?mid=notice&page=2&document_srl=77584


[주4]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564051146979672&id=100001244044375


[주5] “저작권은 단순히 하나의 권리가 아니다. 저작권은 크게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으로 구성된다. 저작재산권은 저작물에 대하여 저작자가 가지는 재산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인데 저작물을 복제하거나 공연, 방송, 전송, 전시 하는 등 이를 이용함으로써 재산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이다. 재산적 권리이기 때문에 저작재산권은 이를 양도할 수 있고, 상속의 대상이 된다. 한편, 저작인격권은 저작물에 대하여 저작자가 갖는 인격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저작물을 공표할 것인지 공표하지 않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공표권), 저작물에 자신의 성명 등을 표시할 권리(성명표시권),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동일성유지권)가 그 내용을 이룬다. 저작인격권은 인격권이라는 특성상 저작자의 일신에 전속하고 양도나 상속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법률저널 「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76) – 응원가와 저작인격권」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062)


[주6] 여기에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국가기간방송인 KBS의 저작재산권 행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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