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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Scope] 독립다큐, <노무현입니다>와 <옥자> 사이에서 길을 잃다 (2017/08/08) 본문

쟁이다

[DMZ Scope] 독립다큐, <노무현입니다>와 <옥자> 사이에서 길을 잃다 (2017/08/08)

은혜 Graco 2018. 4. 23. 17:18

http://dmzdocs.com/archives/11778

독립다큐, <노무현입니다>와 <옥자> 사이에서 길을 잃다


은혜 시민에디터

 

2017년 5, 6월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영화사의 전기(轉機)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5월 프랑스에서는 제70회 칸영화제를 통해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옥자>가 공개되었고, 한국에서는 <노무현입니다>(5월 25일 개봉)가 78,397명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한국 다큐멘터리 오프닝스코어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리고 6월로 접어들면서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10일 만에 누적관객 수 100만을 돌파(손익분기점은 이미 개봉 3일 만에 돌파)했고, <옥자>(6월 29일 개봉)는 멀티플렉스로부터 외면당하는 진통을 겪었으나 군소영화관과 독립예술영화관을 통해 오프라인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그런데 여러모로 역사적인 이 국면에서 키 플레이어로 부상한 것은 다름 아닌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CJ CGV(이하 ‘CGV’)였다. CGV의 ‘존재감’이 도드라진 부분은 단연 <옥자> 상영 보이콧 사태일 것이다. CGV는 온/오프라인 동시 릴리스는 홀드백 기간 유지라는 기존 관행을 무시한 처사라며 한국영화산업 생태계 교란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이에 대해 “CGV가 생태계를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는 성토가 이어졌다. CGV야말로 대기업이 영화의 제작‧배급‧상영 전체를 주무르는 영화산업 수직계열화의 표본이자 첨병으로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입니다>와 <옥자> 포스터

그렇다면 <옥자>(Okja , 2017) 보이콧을 시작으로 불붙은 ‘생태계’ 논의는 상업 장편극영화에만 국한된 일일까. 그렇지 않다. CGV는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Our President, 2017)의 와이드 릴리스를 통해 한국영화계의 적폐를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CGV가 배급을 결정한 시기가 묘하다, (마치 CJ E&M이 지난 정권에서 창조경제의 나팔수 노릇을 했던 것처럼) 새 정부와의 일종의 ‘코드 맞추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고,[1] 이전 정부 하에서 블랙리스트 파동으로 고통 받았던 다큐 신(<다이빙벨>, 부산국제영화제, 시네마달로 이어지는 수난사)과 비교되며 많은 이들을 씁쓸하게 만들었지만, 새 정부와 대기업의 밀월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은 그 밀월을 위해 어지럽혀진 한국의 영화 생태계일 것이다.


영화가 ‘산업’으로서 존재하는 한 그리고 영화관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 한, 관객이 점점 불어나는 영화에 상영관을 늘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흥행 추이에 따라 상영관이 차차 증가하는 것(리미티드 릴리스, limited release)과 선제적으로 상영관을 확보해놓고 시작하는 것(와이드 릴리스, wide release)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따라서 ‘CGV아트하우스 배급을 통한 와이드 릴리스가 없었다면 과연 이토록 획기적인 오프닝스코어 수립(577개 스크린 / 2,739회 상영 / 78,397명 관람)이 가능했을까’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해진다. 또한 생태계 포식자를 연상시키는 CGV의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입니다> 이전까지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역시 CGV아트하우스가 배급한 작품이었고, 저예산 장편극영화의 상업적 성공과 신인 배우/감독 발굴이라는 성취로 회자되고 있는 <한공주>, <도희야>, <소셜포비아>도 CGV아트하우스를 통해 배급되었다.[2]


배급 규모와 방식도 문제적이지만,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노무현입니다>가 (위의 영화들과 달리) 다양성영화가 아니라 일반영화로 분류‧등록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노무현입니다>는 국내 대표 예술영화관 중 하나인 아트하우스모모와 멀티플렉스 독립예술영화관 CGV아트하우스에서 상영되고 있고,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적 외피 때문인지 두 곳이 제작사‧배급사와 한 몸이기 때문인지[3] 대부분의 관객들은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결국 저예산이긴 하나 배급만큼은 대작영화인 <노무현입니다>의 흥행은, 독립예술영화관에서 불안정한 교차상영으로라도 관객들과 만나길 학수고대하는 작은(minor) 영화들을 밟고서 거둔 성공이다. 따라서 이를 두고 ‘독립영화의 저력’이나 ‘콘텐츠의 승리’를 상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4]


 

CGV아트하우스 공식홈페이지

CGV는 아트하우스 상영관 론칭을 알리며 “우수한 독립‧예술영화를 엄선해 최적의 관람환경에서 상영”하고 “단순한 극장을 넘어 관객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공간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5] 그러나 CGV가 자부하는 ‘엄선’이란 사실상 CJ 계열이 제작/배급하는 저예산 영화, 중소형 수입영화(가령 유명 영화제 수상작, 거장 감독/배우의 작품, 기타 마니아층에 어필하는 작품 등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일정한 수익성을 갖춘 영화들), 재개봉작(자체 기획전이나 주문형극장 TOD 서비스) 순으로 고착되어 있어서 정작 개봉관이 절실한 작은 영화들이 설 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CGV의 독립‧예술영화 사업은 돈이 되면서 기업이미지 제고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수익창출모델일 뿐, 다양성‧공존‧상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러한 배급행태를 이윤추구에 혈안이 된 대기업의 부도덕한 반칙행위로 간단히 정리할 수 없는 것은, 애초에 제대로 된 규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성영화의 모호한 개념과 적용이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6]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다양성영화의 선정기준은 크게 (1) 영화진흥위원회의 예술영화 인정심사에서 예술실험영화로 인정한 작품과 (2) 다양성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영화로 나뉜다. 특히 범주 (2)는 ‘다양성 가치’를 작품의 내용과 형식(서사, 미학, 테크놀로지 등) 같은 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계량화할 수 있는 수치(“시장 점유율 1% 이내인 영화형식의 작품”, “전국 지역 시장점유율 1% 이내인 국가의 작품”, “당해년도 1% 미만의 스크린에서 개봉된 한국영화”)로 판단하게끔 고안되어있다. 이처럼 다양성영화 인정여부가 사후적으로 결정되고 있고 그마저도 유동적이어서, 애초에 일반영화였던 것이 다양성영화로 (혹은 그 반대로) 최종 분류되는 기이한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7]


이런 상황에서 다양성영화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어설프고 무책임한 개념이 될 수밖에 없으며, 느슨한 만큼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대기업이 스크린 독과점에 악용하기 좋다. 국적과 장르를 불문하고 소위 ‘대박의 기운’이 감지되지 않는 ‘상대적으로 저예산’인 모든 영화를 다양성영화라는 그럴싸한 울타리에 가두어 놓는 당국의 안일한 처사 덕분에, 대기업은 자사가 제작‧배급하는 작품에 손쉽게 다양성영화 마크를 찍어 자사가 운영하는 영화관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상영할 수 있는 것이다.


당국의 무관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노무현입니다>의 독립예술영화관 점유가 끝나갈 즈음 <옥자>가 등장했다. ‘유통질서 사수’를 결의한 CGV와 여타 멀티플렉스들 덕분에 독립예술영화관들이 너도나도 <옥자> 상영에 뛰어들었고, [8] <노무현입니다>에 이은 일반영화의 독립예술영화관 2차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작금의 상황에서 당국은 어떠한 조치나 언급도 없이 수수방관 중이다. 물론 온라인 스트리밍 개봉이라는 플랫폼 혁신을 최초로 시도한 사례이기 때문에, 그리고 공교롭게도 정권 교체 직후에 개봉했기 때문에 순발력 있는 대처가 힘든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그간의 모습을 보건대, 당국의 침묵은 신중함이 아니라 관성에서 비롯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산업 독과점 개선방안’ 간담회(6월 30일)를 열어 배급·상영 겸영 금지, 스크린 점유율 제한(특정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상영 못하게 규제), 마이너리티 쿼터제(독립영화·예술영화 일정 비율 의무 상영) 등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이다.[9]


 

독립예술영화관들의 ‘옥자’ 개봉 관련 성명

<옥자>의 개봉을 앞두고 JTBC 뉴스룸 문화초대석을 찾은 봉준호 감독에게 손석희 앵커는, 장편데뷔작 <플란다스의 개>(A Higher Animal , 2000)를 개봉관에서 단 3명의 관객과 함께 봤다고 들었다며 그 3명에 대한 인사말을 주문했다. 이에 봉감독은 다들 어디 계시냐고, 보고 싶다고 화답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세계 3대 영화강국 실현 같은 뜬구름 잡는 슬로건이 아니라, 유명 영화제 수상작 타이틀이나 구조적 모순을 악용하여 기획된 천만 영화가 아니라, 이 ‘3명의 관객을 위한 영화관’이 아닐는지. 영화인, 행정당국, 관객들이 진지하게 곱씹어볼 문제이다.


 


[주1] 미디어오늘 「CJ그룹 변신은 정권 따라 바뀐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7128)

[주2] 당시(2015년) 다양성영화의 와이드 릴리스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가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 ACT!편집위원회의 기고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흥행과 씁쓸한 현실」(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889)과 CBS노컷뉴스의 ‘한국영화 안녕한가요’ 연속기사(http://www.nocutnews.co.kr/news/4373807)를 들 수 있다.

[주3] <노무현입니다>는 아트하우스모모의 부사장인 최낙용 프로듀서가 외압을 우려하여 별도로 차린 ‘영화사 풀’이 제작했고 CGV아트하우스가 배급을 맡았다.

[주4] 현행법에 따르면, 이러한 비판은 직관적이고 도의적인 수준의 문제제기가 되고 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인정한 예술영화와 일반상업영화(국적 불문)를 연간 6:4의 비율로 상영하고 한국독립예술영화를 연간 73일 이상 상영하면 전용상영관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8조) ‘전용’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헐거운 기준이 CGV아트하우스 같은 대기업에게 ‘합법적인’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5] http://www.cgv.co.kr/arthouse/show-art.aspx

[주6] 단적인 예로 다양성영화의 정의와 기준이 궁금해 포털사이트를 검색해보면, 현재 상영 중인 다양성영화가 무엇인지만 나오지 그 영화가 왜 다양성영화로 분류되었는지는 찾아볼 수 없다. 영화진흥위원회나 문화체육관광부 등 당국의 링크페이지는 어디에도 없고 다양성영화 관련 기사‧칼럼‧논문 등 2차 자료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영국에서 통용되는 명칭인 ‘specialised film’(‘특화된 영화’, ‘특수한 목적을 지닌 영화’라는 뜻으로 한국의 ‘다양성영화’와 유사함)을 검색하면 영국영화협회의 문서가 맨 먼저 나오는데, 여기에는 총 6가지 범주와 각각의 근거가 간결하지만 명확하게 서술되어있다. (http://www.bfi.org.uk/sites/bfi.org.uk/files/downloads/bfi-definition-of-specialised-film-bfi-neighbourhood-cinema-2016-01.pdf)

[주7] 송은지, 「다양성영화 담론 연구」,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2014, 38-41쪽.

[주8] 오마이스타 「<옥자>만 종일 상영하는 예술영화관 “이건 아니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37449)

[주9] 뉴스엔 「영화산업 불공정관행 사라지나? 문체부 독과점 개선방안」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707040749460210)
관건은 이 개선방안을 어떤 내용으로 구체화할 것인가이다. 배급‧상영 겸영 금지의 경우 법적 효력을 갖게 되면 영화산업 수직계열화에 일정한 균열을 낼 수 있겠지만, 스크린 점유율 제한과 마이너리티 쿼터제의 경우는 다양성영화(그리고 독립‧예술영화) 개념이 지금처럼 애매모호한 상태라면 유명무실해질 공산이 크다. 그래서 영화계 일각에서는 ‘독립‧예술영화 배급망 내 스크린 점유율 제한 및 쿼터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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