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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재의 현상학에 관한 주요한 생각들 - 우고 마테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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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재의 현상학에 관한 주요한 생각들 - 우고 마테이

은혜 Graco 2016. 4. 3. 22:29

원문 http://wealthofthecommons.org/essay/first-thoughts-phenomenology-commons




공통재의 현상학에 관한 주요한 생각들

 


우고 마테이 | 은혜 옮김



* 우고 마테이(Ugo Mattei, 이탈리아)는, 토리노대학과 UC 헤이스팅스의 법학교수이다. 로라 네이더와 함께 『약탈 : 법의 지배가 불법일 때 Plunder, When The Rule of Law is Illegal를 집필했으며, 최근작으로는 공통재 : 하나의 선언 Bene Comuni: Un Manifesto이 있다.


 

공통재는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공통재는 삶에 꼭 필요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가져야할 자원이다모든 사람은 공통재를 동등한 몫으로 가질 권리를 갖고 있으며, 법을 통해 공통재에 대한 동등하고 직접적인 접근()을 요구할 권능을 보장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공통재에 대한 동등한 책임을 가지며, 공통재의 부를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직접적인 책임을 공유한다. 공통재는 시장의 힘에 의해 형성된 사적 소유와 국가 양자에 근본적으로 대항하며, 해방과 사회정의의 강력한 원천이다. 그러나 공통재는 과학적 실증주의에 토대를 둔 지배적인 학문담론에 의해 묻혀 있었다. 해방을 가져오기 위해 공통재는 현상학적인 진정한 인식 전환을 통해 해방되어야 한다.

 

사회정의는 서구 민주주의에서 (지금은 쇠퇴한) 복지국가의 제도들을 통해 추구된다. 사회정의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은 대개 후세의 권리를 통해 제기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후세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주장한다.

 

이러한 시각은 정부에 사회적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짐을 지우는 것으로서 서구 법철학(jurisprudence) 발전에 핵심적이었다. 과학혁명과 종교개혁 이후로 사회정의는 사법(私法)이라는 핵심영역에서 퇴출되었다. 16세기에 존재했던 스콜라적 법관념분배정의와 교환정의라는 두 가지 정의 개념에 기초한다은 근대적 서구 법철학이 시작되면서 폐기되었다. 17세기에 그로티우스가 등장하면서부터, 정의에 대한 관심은 계약에 따른 교환의 공정성이라는 문제와 동일시되었다. 분배는 사회의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사회에 적용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하나의 사회적 사실로 여겨졌다. 이런 식으로 분배정의에 대한 관심은 법학에서 퇴출되었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실증주의라는 패러다임과 근대성이라는 지배적인 지식을 낳은 이른바 과학혁명과 함께 17세기에 일어났다.(Capra 2009)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사실은 반드시 가치와 분리되어야 한다. ‘~이다의 세계는 ‘~이어야 한다의 세계와 판이한 것이다. 18세기에 독자적인 지식분야로 발전한 경제학이 이러한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Blaug 1962) 분배는 측정가능한 사실(‘~이다’)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적 가치(‘~이어야 한다’)의 영역에서만 고려된다. 그 결과, ‘공정한 사회에서 자원은 어떻게 분배되어야 하는가와 관련된 사안들은 법에서뿐만 아니라 경제학이라는 자칭 과학적 담론에서도 퇴출되었다.

 

이로써 분배정의는 공법에 따른 국가제도와 규제를 통해 (조금이라도) 다뤄질 정치의 문제가 되었다. 20세기 초 복지국가의 탄생은 취약한 사회구성원들에게 얼마간의 사회정의를 보장한다는 특정한 목적을 가진, 규제(주로 세금)를 통한 예외적인 시장개입으로 간주되었다. 이후로 서구에서 사회정의는 다시는 권리담론의 핵심부를 거머쥐지 못했고, 그 결과 국가재정위기에 좌우되는 것으로 남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돈이 없으니 사회적 권리도 없다!(Mattei & Nicola 2006)

 

공통재 개념은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정의의 주변화를 해결하기 위한법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필수적인 도구들을 제공해줄 수 있다. 국가/시장 이원체제 바깥에 있는 하나의 제도적 틀로서의 공통재는, 더욱 공평한 자원분배를 제공하여 대안적인 법률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제대로 이론화되고 정치적으로 인식된다면, 공통재는 사람들을 직접행동에 나서도록 세력화함으로써 법적경제적 담론의 핵심부에 사회정의를 재도입하는 중대한 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공통재를 깨닫기

 

현재 통용되고 있는 시각은 공적인 것’(정부의 영역)사적인 것’(시장과 사적 소유의 영역)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 속에서만 모든 가능성이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이 정체된 대립은, 오늘날에도 법과 경제학에서 여전히 지배적인 근대적 전통의 산물이다. 이는 공적인 것의 시야에서 공통재를 감춰버린다.


공통재는 여러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공통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를 종종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공통재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 중 다수는 공통재의 본질적인 가치를 고려에 두지 않고, 공통재가 파괴되어 그것을 대체할만한 것을 찾아야 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된다. 공통재는 가사노동과 어느정도 유사한데, 그 노동이 행해지고 있을 때에는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달리 말해 당신은 뭔가가 사라지기 전에는 그것이 아쉬운 줄 모른다. 일례로 해안지역에서 맹그로브가 하는 역할을 들 수 있다. 개발 결정을 내릴 때, 사람들은 맹그로브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 지진해일로부터 해안가 마을을 보호하는 맹그로브의 중요한 역할을 고려하지 않는다. 지진해일이 덮쳐서 마을이 파괴되어야지만 그런 식물들의 가치가 드러난다.(Brown 2009) 그와 유사한 인공장벽을 세우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든다.

 

공통재를 깨닫고 그것이 지구 생태계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제대로 아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요하며 진지한 학문적 노력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공통재는 분석을 위한 것으로 국한될 수 없다. 공통재는 완전히 전체론적인 접근법을 추구한다. 시장/국가 제로섬이라는 상을 내면화해온 지배적인 사회과학이 이 문제를 파악하는 데 불충분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통재가 서구의 적법성국가/사적 소유 이항대립과 개체론의 결합을 보편화하는 것에 토대를 둔 적법성이 갖는 가장 심오한 측면들과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어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근대 국가가 탄생하기 전 고대 로마의 옛 부족들은 일상적으로 공유지[공통재]를 강탈하여 자신의 소유지를 넓혀나갔다. 엥겔스는 공통재의 사유화를 유럽 발전의 가장 근본적인 경제적 패턴으로 묘사한다. 이렇게 서구의 법은 공통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인지자본주의에서도 발전의 패턴인 것 같다.(Boyle 2003) 인터넷 P2P 교환으로 기소당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반대로, 커머너(commoner)들이 공통재를 장악하려는 사람들을 고소하기 위해 법정에서 자신들을 대변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역사적으로나 우리 시대에나 공통재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는 사람들은 법률상의 주인이 아니라, 법정 체계를 활용할 어떠한 수단도 갖고 있지 않은 가난한 농민들(오늘날의 경우는 인터넷 이용자들)이다. 초기 자본주의의 중요한 국면에서 영국의 농민들이 얼마나 손쉽게 인클로저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는지를 기억하자. 신흥 제조업자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프롤레타리아트의 노동력을 제공했음을 말이다. 인클로저 그리고 재산을 빼앗긴 농민들을 자본주의의 노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행해졌던 폭력적인 모집은, 근본적으로 사적 소유와 국가의 결탁이 없었다면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Tigar 1977)

 

공통재를 시장 또는 정부에 대한 이론적으로 빈약한 예외로 간주하는 지배적인 시각은, 법에 관한 지배적인 서구적 시각의 기원과 그 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사실이 실재가 되는 방식이다.

 

 

시장-국가 이항대립의 베일을 찢기

 

사적 소유와 국가는, 세계를 보는 지배적인 관점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두 개의 주된 법적정치적 제도이다. 그러나 국가 대 사적인 것이라는 논쟁구도는 거짓된 이항대립을, 즉 차이 없는 구별을 나타낸다. 국가는 더 이상 개인들의 집합을 대변하는 민주적 대의가 아니라, 여러 시장 행위자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국가와 사적 이익의 공모 또는 합병이 평형상태의 양쪽에는 동일한 행위자(기업)들이 놓여 있다공통재라는 틀이 들어갈 조금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는다. 공통재가 줄 수 있는 혜택에 대한 증거를 들어 납득시키더라도 말이다.

 

통상적인 지식에 따르면 시장과 국가는 근본적으로 상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시장과 국가가 제로섬 관계라고 암암리에 가정하고 있다. 국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시장의 영향력이 작아지는 것과 같고, 시장의 영향력이 작아지는 것은 국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은 역사적으로도 우리 시대에도 전적으로 거짓이다. 사람들의 삶을 받쳐주는 사회적 제도로서의 시장과 국가는, 상호공조관계 속에서만 구조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대 국가라는 날조된 이 명쾌한 대립은 개체론적 전통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선택된 것임을 반영한다. 이러한 상충은 각자 사적 소유와 국가주권의 일인자인 로크와 홉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자유주의적 개체론이 시작되면서 등장했다.

 

이러한 환원은 권력의 집중에 기반을 둔 소유(시장)와 주권(국가)이 공유하고 있는 구조를 감춘다. 사적 구조(기업)는 의사결정 및 배제할 수 있는 권력을 한 주체(소유주)의 손에 또는 하나의 위계체계(CEO)에 집중시킨다. 이와 유사하게 공적 구조(관료제) 역시 권력을 주권적 위계의 최상부에 집중시킨다. 이 두 가지 원형은 모두 하나의 근본적인 구조, 즉 객체(사적 재화, 조직, 영토)에 대한 주체(개인, 회사, 정부)의 지배라는 구조에 삽입된다. 동일한 구조를 공유하고 있는 두 영역 사이의 이러한 가짜 대립은 근대적인 데카르트적 환원론의 사상, 수량적이고 개체론적인 사상이 가져온 결과이다.

 

홀로 존재하는 자기도취적이고 결여된 개인 주체는 생산물, 상품, 외부적 객체에서 욕망의 충족을 얻는다. 자연으로부터의 소외를 낳은 (‘우리는 자연을 소유한다. 고로 우리는 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이 빈한한 관계의 지평은 객관적인 것으로서 과학적으로 구축되고, 점점 더 복잡해져가는 다양한 욕구충족에 지불되는 가격이라는 체계를 통해 측정된다. 자유주의적 전통의 전형적인 개체론적 허구가령 로빈슨 크루소의 신화는 공동체적 경험에 대한 의식을 지워버림으로써 시장 수요(market needs)를 도입한다. 고립된 개인은 더 많은 욕구를 가질수록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더 많은 화폐를 모을 수 있다. 이로써 의미 있는 관계에 기초한 질적 패러다임은 양적 패러다임에 굴복한다.

 

불행히도 생태학과 계통적’(systemic) 사고개체론적 축적이 공동체적 삶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드러내줄 패러다임이다는 현대 정치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패러다임이 사회과학’(특히 미시경제학, 정치학, 마케팅)에게는 그저 아이디어 창고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시생물학자 가레트 하딘의 유명한 문구인 공유지의 비극’(Hardin 1968)공유지는 무법천지이기 때문에 황폐해지기 마련이다과는 반대로, 객체로서의 개인에 의거하는 국가시장 메커니즘이야말로 오늘날 이러한 황폐화를 저지른 장본인이다.(Feeney et al. 1990)

 

 

경쟁 대 협력 대립구도에 존재하는 두 가지 세계관

 

개인의 이기심은 하딘의 분석의 토대를 이루는 중심가설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모델을 조야하게 적용할 때에만 비로소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의 성과(와 학문적 성취)를 설명할 수 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저작에서 연원하여, 단기적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개인에 주목했던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에 의해 18세기 주류 정치경제학 내에 도입되었다. 하딘의 비극우화는 공유지를 무법천지로 묘사하면서 이 전통을 지속시켰다. 하딘에 따르면 자유롭게 전유할 수 있는 공통의 자원은 기회주의적인 개인의 축적행위와 궁극적으로 파괴적이고 무용할 뿐인 소비를 자극한다. 이러한 논증은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뷔페에 초대된 사람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다른 사람들과 풍요를 공유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혀 저장할 수 있는 칼로리의 양을 극대화하려고 돌진하는, 최소의 시간동안 최대의 음식을 효율적으로 다 먹어치우는 사람 말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상충하는 두 가지 세계관을 조명한다. 우세한 세계관은 사실상 사회진화론으로, 이는 물리적법적 인간들 간의 경합’, ‘다툼’, ‘경쟁을 실재의 본질로 만들어버린다. 반면 열세한 세계관, 즉 세계에 대한 생태적이며 전체론적인 이해는 관계, 협력, 공동체에 기초하고 있다. ‘주변부의 공동체 조직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이 모델은 세계은행과 IMF의 구조조정, 광범위한 근대화’, ‘개발계획의 무자비한 공격을 계속 겪고 있다. 이 책에 들어있는 여러 글들이 증언하고 있듯이 이러한 노력은 토지와 토착지식의 상품화는 물론, 계속되고 있는 약탈을 정당화해주는 레토릭으로서 기능하는 문화적 교정(인권, 법치, 젠더평등 등을 부과하는 것)까지 조장한다.(Mattei & Nader 2008)

 

엘리너 오스트롬과 사회과학자들로 구성된 그녀의 팀은, 협동적 소유 배치가 실상은 성공적임을 그리고 개인들이 반드시 공유자원(common-pool resources)를 파괴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양의 경험적 증거자료를 성공적으로 한데 모았다. 오스트롬의 작업은 이견의 여지없이 경제학 이론에 결정적인 전환점을 찍는다. 이는 하딘의 비극을 논박했으나, 개인은 그렇지 않더라도 기업과 국가가 여전히 비극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다. 오스트롬의 발견에는 한편으로는 커머너들이 벌인 격렬한 역사적정치적법적 투쟁,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사적 소유(자본) 간의 수상한 동맹에 대한 고찰이 빠져있어 그 적실성은 제한적이다.

 

맑스가 서술한 이른바 시초축적, 중앙집권적 국가구조와 사적 소유 및 기업구조를 통한 자본집중의 동맹에 의해 계속되어 온 하나의 제도적 현상이었다. 이 과정은 평범한(‘-제도적인’) 인간을 희생시켰으며, 소수에 의한 다수의 잔혹한 제도적 착취 과정을 양산했고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했다. 이러한 현상은 영국의 인클로저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식민지 해외팽창 시기에 존 로크를 비롯한 학자들이 찬성한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독트린은 비극 양산행위의 제도적 성격을 확증한다.(Mattei and Nader 2008) 토착민들은 사적 소유라는 문명화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상태를 부정당하다시피 했다(자연상태로 환원되었다). 지배의 유형, 제도적 환경, 인클로저의 서사가 더욱 미묘한 형태를 띠어왔을 뿐, 근래에 들어서도 공통재에 대한 인클로저는 계속되고 있다.

 

하딘의 우화는 오스트롬의 비판과 하딘의 지적 결함가령 공유지는 무법천지라는 가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청난 예측능력을 건사하고 있는데, 이는 바로 근대성이라는 제도적 맥락 바깥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법칙으로서의 순전한 인간이 공통재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국가와 기업을 매개로 움직이는 제도적 인간이 계속해서 비극적인 결과들을 양산하고 있다. 오스트롬이 수집한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하는 살아 숨쉬는 개인들의 사례는 하딘의 주장을 무너뜨릴 능력이 없는 것 같다. 이 사례들은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제도적 현실과 실제 권력구조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오스트롬의 비판은 시선을 이 문제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위험을, 그리고 경제적정치적 실력자들을 비극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숨겨줄 위험을 무릅쓴다.

 

종종 학자들은 (앞서 논의한) 국가와 시장의 그럴싸한 이항대립을 수용하고, 상품화 담론과의 발본적인 단절을 이룰 공통재에 대해 더욱 심도 깊은 현상학적 이해를 발전시키길 거부한다. 공통재를 상품으로 이해하는 것은 여러 유형의 공통재(자연적 공통재, 사회적 공통재, 문화적 공통재, 지식기반 공통재, 역사적 공통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실제로 제한하며, 공통재의 혁명적 잠재력과 근본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자원 재분배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무디게 만든다. 공통재에 관한 많은 문헌들은 전통적인 기계론적 관점과 객체/주체 분리 및 그에 따른 상품화를 재생산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그리고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Rota 1991)

 

 

공통감각을 복원하기

 

공통재에 대한 현상학적인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주체와 객체 모두를 상품으로 만드는 환원론적인 주체-객체대립을 넘어서게 만든다. 이는 공통재가 사유재공공재와 달리 상품이 아니며 소유의 언어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공통재는 질적 관계를 표현한다. 우리가 공통재를 갖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환원적인 진술이 될 것이다. 그럴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환경, 즉 도시 또는 농촌 생태계의 일부인 만큼 우리 자신이 얼마나 공통재인가를 알아야한다. 여기서 주체는 곧 객체의 일부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통재는 서로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개인과 공동체와 생태계 자체를 이어준다.

 

이러한 전체론적 혁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 연구에서 후설과 하이데거 같은 후기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유서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특히 후설과 하이데거는, 주체가 관찰대상[객체]과 분리되어있고 개인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분리되어있는 객관적인세계의 종언을 고하는 정초’(fundierung)연관’(relevance) 같은 개념을 사용했다.[각주:1] 자연과학에서도 물리학과 계통생물학을 통해 새로운 전체론적 태도가 등장했다. 이는 양적 측정과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의 실증주의적 환원론이 아니라 관계들을 질적으로 연결시켜 전체 지도를 그리는 것에 기초한다.(Capra 2004) 특히 양자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개념은 인지과학이나 의식연구 같은 분과학문들이 시도하고 있는 인식론적 혁명을 가져왔다. 이러한 분과학문들에서 전체론적 혁명이 풍성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이 혁명은 사회과학에서도 채택되어야 한다.

 

공통재는 현상학적이고 전체론적인 관점에서만 서술될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환원론과, 그리고 권리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전통에서 발전된 개체의 자율성이라는 관념과 양립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포함접근성공동체의무에 기반을 둔 공통재는 생태적-질적 범주인 반면, 소유와 국가주권은 (희소성을 낳는) 배제개인중심적 권리라는 레토릭과 권력의 소수에게로의 극단적 집중에 기반을 둔 경제적-양적 범주이다.

 

이러한 통찰은 법학자들에게, 이원론(소유/국가, 주체/객체, 공적인 것/사적인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법적 질서의 토대를 구축하는 어렵고도 시급한 과제를 다루도록 요구한다. 새로운 질서는 사적 소유, 개체론, 경쟁의 지배를 극복해야하며, 집단적인 것과 공통재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장기적인 지속가능성과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전지구의 모든 커머너들의 완전한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환경을 창안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지배적인 서구 지식의 두 가지 근본 요소인 국가와 사적 소유가 공히 품고 있는 약탈의 욕망으로부터 인식상의 (그리고 정치적인) 해방을 이루어야한다.

 


정치적 전환

 

오늘날 우리는 공통재가 실재를 지각함에 있어 근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전환을 제안한다는 것을, 지구온난화에서 경제 붕괴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례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통재는 근대적 자유주의와 합리주의라는 환상을 거부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공통재를 사적 소유와 국가 사이에 있는 단순한 제3의 길이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논쟁의 대부분이 시사하는 바이다로 간주하는 것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공통재는 서구의 역사적 향연의 잔재를 관리하는 것오늘날의 정치영역은 여기에 몰두하고 있다으로 축소될 수 없다. 이와 달리 우리는 공통재가 사적 소유 영역과 그 이데올로기 장치, 그리고 국가를 제대로 문제 삼는 하나의 제도적 구조로서 격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의 길이 아니라 사적 소유와 국가의 동맹에 도전하는 것으로서 말이다.

 

우리가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성취해야할 전환은, 지배적인 지식을 객체(영토 또는 환경)에 대한 주체(소유자 또는 국가)의 절대적 지배에서 양자(주체-자연)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각 개인의 생존이 다른 사람들, 공동체, 환경과의 관계에 달려 있음을 인지하는 새로운 공통감각이 필요하다.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 할 전체론적 시각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양(과학혁명과 자본주의적 축적의 근본관념)에서 질로의 방향전환이 요구된다.

 

공통재에 기반을 둔 법체계는 생태계를 하나의 모델로서 사용해야한다. 여기서 개인들 또는 사회집단들의 공동체는 수평적으로 연결되고 권력은 분산된다. 이는 전반적으로 참여 및 협력 모델, 즉 권력의 집중을 막고 공동체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모델을 지지하면서 위계 관념을 거부해야한다. 사회적 권리는 이러한 틀 속에서만 실제로 충족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를 따르면 공통재는 단순한 자원(, 문화, 인터넷, 토지, 교육)이 아니라 인클로저와 기업화라는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은 추세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실재를 사고하는 하나의 공유된 방식이다.[각주:2]

 

2008년에 일어난 극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케인즈적 정책이라는 별칭을 가진 국가 개입은 계속 막대한 양의 공적 자금을 사적 부문으로 이전시키는 데 복무했다. 사적 부문과 국가 부문이 공유하고 있는 약탈 논리는 이보다 더 공공연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공통재라는 틀의 거대한 확장, 더 적은 정부, 더 적은 시장, 더 많은 공통재이다. 나는 이것이 사회통합의 대안적인 서사를 소생시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Blaug, Mark. 1962. Economic Theory in Retrospect, 1st ed.

Capra, Fritjof. 2004. The Web of Life. A New Scientific Understanding of Living Systems.

Heidegger, Martin. 1962. Being and Time. John Macquarrie and Edward Robinson, translators.

Mattei, Ugo & Nader, Laura. 2008. Plunder. When The Rule of Law is Illegal.

Mattei, Ugo & Nicola, Fernanda. 2006. “A Social Dimension in European Private Law? The Call for Setting a Progressive Agenda.” 45 New England L. R. 1-66

Mattei Ugo. 2011. Beni comuni. Un manifesto. Laterza, Bari, Roma.

Boyle, James. 2003. “The Second Enclosure Movement and the Construction of the Public Domain.” In 66 Law and Contemporary Problems 33-75.

Brown, Lester R. 2009. Plan B 4.0. Mobilizing to Save Civilization. New York, NY: Norton.

Feeney, David and Berkes, Fikret and McCay, Bonnie J. and Acheson, James M. 1990. “The Tragedy of the Commons: Twenty-two years Later.” Human Ecology. 18(1).

Hardin, Garrett. 1968. “The Tragedy of the Commons.” Science (December 13, 1968): 1243-1248.

Rota, Gian Carlo. 1991. The End of Objectivity. The Legacy of Phenomenology, Lectures at MIT, 1974- 1991. Second Preliminary Edition, in collaboration with Sean Murphy and Jeff Thompson.

Tigar, Michael. 1977. Law and the Rise of Capitalism. New York, NY. Monthly Review Press.




  1. [옮긴이] 네그리와 하트 역시 현상학을 주객이분법에 기초한 역사철학을 극복하는 계기로서 고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하이데거에서 후설, 메를로 퐁티, 푸코로 이어지는 현상학의 변이를 따라가면서, 현상학이 주객이분법에 대한 이론적 비판에 머물지 않고 신체, 저항, 주체성 생산의 현상학으로 도약 하는 데 주목한다. 네그리와 하트의 현상학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네그리‧하트, 『공통체』, 사월의책, 2014, 61-67쪽. [본문으로]
  2. [옮긴이] 역사적으로 인클로저 이전의 공유지를 의미했던 the commons는, 오늘날 생산의 비물질화와 더불어 지식이나 정동을 담은 생산물(대표적인 예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creative commons’)까지 포괄한다. 그래서 우고 마테이를 비롯한 이 책의 저자들은 공통재가 생산의 원료나 산물일 뿐만 아니 라 생산활동 그 자체이며 나아가 하나의 세계관이자 삶의 방식(삶형태)이라는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이 모든 층위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the common(공통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다. 공통적인 것에 대한 개념적 설명은 다음을 참조하라. 네그리‧하트, 『공통체』, 사월의책, 2014, 9-13쪽. 연구공간 L,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 난장, 2012, 13-15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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