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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007에 대한 회고록, 혹은 뒤늦은 덕밍아웃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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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007에 대한 회고록, 혹은 뒤늦은 덕밍아웃

은혜 Graco 2021. 9. 30. 19:50

문화수요할인(천원 올라서 6천원!)을 야무지게 챙겨 먹고 있는 터라 개봉 첫날 재빨리 <노 타임 투 다이>를 보고 왔다. MGM에겐 어림없는 소리겠지만,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이 트릴로지로 끝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스펙터>와 <노 타임 투 다이>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별책부록 같은 영화다. <스펙터>를 보고 '거봐, 내가 뭐랬어'라며 혀를 찼지만, 마치 명탐정 코난을 꾸역꾸역 챙겨보듯 정으로, 의리로 <노 타임 투 다이>도 보고 왔다.

<노 타임 투 다이>는 나의 최애작인 <카지노 로얄>과 수미쌍관을 이루고 있다. 내가 다니엘 크레이그 007 시리즈를 애정함에 있어 <카지노 로얄>의 지분은 8할에 가깝다. <스카이폴>도 의심의 여지없는 역작이지만 이 시리즈의 스타트를 끊어준 <카지노 로얄>의 공만 할까 싶다. 흑백의 혈투씬으로 시작하는 건배럴 시퀀스와 마다카스카르 공사장에서 펼쳐지는 극한의 파쿠르 액션 시퀀스는 그 자체로 이전 007과의 단절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이었다. (80년대생인 나의 첫 007은 피어스 브로스넌이지만 '졸거나 꺼버리거나'일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어서 나의 실질적인 첫 007은 다니엘 크레이그다. 에헴.)

많은 사람들이 007의 쇄신을 두고 '본 시리즈'의 영향을 언급한다. 확실히 007의 리부트는 본 시리즈의 자장 속에 있다. 머리칼 하나 옷매무새 하나 흐트러지는 일 없이 온갖 가젯으로 악당을 제압하는 소꿉장난 같은 액션이 더 이상 '멋'이 아니라 우스워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리부트된 007의 미덕은 액션 패러다임에만 있지 않다. <카지노 로얄>에서 M이 승격되자마자 파괴왕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본드를 두고 냉전 드립('이걸 적국에 내다 버릴 수도 없고 냉전 시절이 그립다, 블라블라')을 치는데, 유머러스한 농담인 동시에 리부트 시리즈의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는 의미심장한 대사다. (덧붙여 <스카이폴>의 빌런 라울 실바를 떠올리면 약간 소름 끼치는 대사이기도 하다.) '이전 007과의 단절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이란 결국 냉전 패러다임식의 근대적 이분법과의 결별이기 때문이다.

피아 식별이 무너진 세계, 적을 특정할 수 없는 세계, 외부가 없는 세계. 피어스 브로스넌이 본드로 분한 세기말 007 시리즈는 이러한 변화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테크놀로지를 장착한 히틀러 아류들을 빌런으로 설정하면서 안드로메다로 가버렸지만, 21세기 007 시리즈는 달랐다. <카지노 로얄>은 아프리카 내전을 배경으로 테러조직의 자금줄에 얽힌 작전이었고, <퀀텀 오브 솔라스>는 저발전 국가 독재정권과 자본의 결탁을 배경으로 천연자원 문제를 건드리고 있으며, <스카이폴>은 국가로부터 외면당한 전직 요원을 통해 일종의 'MI6 내전'을 그리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외삽된 미치광이 악당 대신 자본주의적 국가/국제관계를 끌어와 상당한 동시대성을 확보한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정치학적 짜임새 외에도, 캐릭터들이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은 21세기 007 시리즈의 또 다른 미덕이다. 쉽게 말해 캐릭터들이 '생각'이란 걸 한다(코기토 에르고 숨). <카지노 로얄>에서 생사가 갈리는 접전을 처음으로 경험한 베스퍼가 충격에 빠져 파르르 떠는 장면이나 그런 그녀를 묵묵히 위로하는 본드의 모습(베스퍼의 손톱에 물든 피를 입으로 빨아서 빼준다)은, 007 시리즈는 물론 여타의 블록버스터 액션 장르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정서를 자아낸다. <스카이폴>에서도 마찬가지다. 저택 스카이폴에서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며 본드는 굳이 꺼내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마주하고 M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되뇌는데, 이 시퀀스 역시 기능적으로 휘발되는 비장미가 아니라 밀도 있는 존재론적 회의감이 묻어난다.


그러나 트릴로지를 거치며 더 큰 조직, 더 큰 배후가 암시될 때마다 엄습했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스펙터>는 '하나의 절대악', '악의 근원'이라는 모델로 퇴행함으로써, 권력의 다층적인 작동방식과 입체적인 캐릭터를 통해 쌓아 올린 동시대성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다 된 밥에 일루미나티 빠뜨리기?) 게다가 스토리가 두 라이벌의 과거사 정리에 할애되고 있는데 그 실체가 결국 아버지에 대한 인정 욕구와 본드에 대한 열등감이라니. <노 타임 투 다이>에서도 출신 배경으로 인한 의심과 반목, 대물림되는 복수전 등 갈등 구조가 캐릭터의 가족 서사로 틀 지워져 내러티브가 한없이 납작해져 버린다. (공교롭게도 본 시리즈 역시 맷 데이먼의 4번째 작품 <제이슨 본>에서 '뿌리 찾기'로 급선회하는데, '나는 누구인가'가 '내 아버지는 누구인가'로 소급되는 사고 회로 역시 납작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노 타임 투 다이>는 본드가 은퇴한 후 007을 물려받은 요원이 흑인 여성이라는 점, 신경가스 같은 클리셰를 넘어 DNA 정보로 표적 살인(MI6의 계획)과 대량 살상(빌런의 계획)이 가능하다는 설정, 역이용되는 기술을 보며 회의하는 M, 007의 살인은 정당한가라는 문제 제기 등, '동시대성'이라는 트릴로지의 성취를 나름대로 착실히 계승하고 있다. 신화적 요소(대를 이은 은원 관계,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 없는 저주 등)와 <아마겟돈>스러운 결말이 다소 오글거리지만, 액자를 뚫고 나오는 베스퍼와 전임 M의 존재감만으로도 훌륭한 갈무리이자 마무리라고 생각된다.

<인디아나 존스>와 <더 록>으로 숀 코너리를 처음 만난 80년대생으로서, 숀 코너리의 007이 발산한 아이코닉한 매력을 설파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잘 와닿지 않으면서도 '대단했나 보네'하며 호기심이 생기곤 했다. 이제 십수 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면, 어느 날 내 앞에도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을 모르는 친구들이 열변을 토하는 나를 보며 호기심을 갖겠지. 나는 숀 코너리의 007을 감상하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는데, 그 친구들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을 꼭 감상했으면 좋겠다. 나의 실질적인(?) 첫 007이자 아직은 마지막 007인 제임스 '다니엘 크레이그' 본드,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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