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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매력만점 철거농성장』ㅡ 참담한, 고마운, 그리운, 실성한 531일의 기록 본문

쟁이다

[서평] 『매력만점 철거농성장』ㅡ 참담한, 고마운, 그리운, 실성한 531일의 기록

은혜 Graco 2016. 4. 3. 20:57



참담한, 고마운, 그리운, 실성한 531일의 기록



실천문학 2013년 봄호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는 두리반이라는 식당이 있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을 뜻하는, 식당 이름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싶은 정겨운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으로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기까지 두리반은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었다. 2005년 3월 동교동 삼거리에 자리를 잡았던 두리반은 공항철도역사 건설계획으로 땅값이 폭등하면서 벼랑으로 내몰렸다. 2008년에 시작된 법정싸움이 남긴 것은 이사비용 300만원이 전부였고, 이마저도 ‘험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순순히 받고 나가라는 겁박의 표시일 뿐이었다. 그러던 2009년, 아마도 홍대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는 날 중 하나일 성탄 전야에 두리반은 철거용역의 폭력에 짓이겨졌고 펜스로 둘러쳐졌다. 그리고 그 이튿날인 성탄절날, 펜스는 뜯어졌고 철거농성이 시작되었다. 


  ‘건물, 시설 따위를 없애거나 걷어치움’이라는 국어사전의 무미건조한 뜻풀이는 ‘철거’라는 단어의 무게를 결코 감당하지 못한다. 언제나, 철거되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 공간을 채워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이 쏟은 땀과 웃음과 눈물이 끈끈하게 엉겨붙어있다. 고로 언제나, 어떤 건물이 철거된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철거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적절한 보상이란 있을 수 없다. 이른바 합리적인 협상과 보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쫓겨나는 자의 양해에 빚을 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철거과정은 이 모든 것을 깡그리 무시한다. 설득이 있어야할 자리에 협박과 폭력이 난무하기에 모든 철거는 결국 강제철거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존엄이 패대기쳐지고 목숨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시위’하는 ‘농성’이 시작된다. 어떤 이들은 목적의 성격을 의심하고, 또 어떤 이들은 한자리를 떠나지 않는 모습을 지겨워한다. 이러한 의심과 지겨움의 눈초리를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싸우는 것이 바로 농성이다.   


  철거와 농성. 정말이지 외롭고 서럽고 처절한 단어의 결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두리반의 경험은 이것을 ‘매력만점’이라고 말한다. 두리반 투쟁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은 펜스를 뜯고 들어간 후부터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531일의 대장정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이 대장정의 기록은 TV 프로그램에 빗댄다면 정제된 시사교양이라기보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리얼 버라이어티 혹은 논픽션 시트콤에 가깝다. 철거농성과정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모아놓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코드가 웃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설가인 저자의 구수하고 맛깔스런 입담까지 더해지니 영락없다.

 

  우연히 철거민이 된 한 소시민이 완전한 철거민으로 거듭나는 성장담은 애틋한 미소를 부르고, 주민의 안녕에 복무해야할 공공기관들의 무능함과 뻔뻔함은 분노보다는 비웃음을 사며, 두리반 사람들의 그 별명만큼이나 자유분방한 행동에는 큰 웃음이 빵 하고 터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두리반 철거농성장에 슬픔의 정서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펜스를 붙잡고 하염없이 통곡했던 밤이 있었고,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자괴감과 싸워야했고, 철거민을 보호하기는커녕 탄압하고 기만하기 바쁜 공권력에 울화통이 터졌다. 그럼에도 슬픔보다는 즐거움이, 눈물보다는 웃음이 이 책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두리반 투쟁이 갖는 놀라운 힘이라 할 수 있다. 그 힘은 철거농성의 당사자인 저자가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변신해가는 과정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두리반에 결합하여 협력하면서 당사자라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과정을 통해 확인된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두리반이 철거 위기에 처한 소식을 듣고서 자신의 유년시절 한 구석을 자리 잡고 있던 철거민에 대한 기억과 대면한다. “추레하고 힘없고 비굴한” 철거민의 기억을, 그래서 보이지 않는 테두리를 그어 그 선 바깥에 머물며 안도했던 기억을 곱씹는다. 이 기억은 철거농성을 결심하기까지 그리고 철거농성이 시작된 후에도 스멀스멀 기어올라 그를 괴롭힌다. 그에게 철거농성은 이 왜곡된 기억을 지워내고 새로운 기억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철거민은 결코 추레하고 힘없고 비굴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추레하고 힘없고 비굴한 것은 “돈만 아는 저질들”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과 세상에게 확인시키는 자기긍정의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한 철거민의 개인적인 수양이나 극기의 과정이 아니라, 두리반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노는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별명으로 불리는 두리반 사람들은 별명 못지않게 다양하고 기막힌 재주들을 가지고 있었고, 두리반은 기꺼이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철거민 유채림이 기고문을 써서 작가의 방식으로 싸우고 두리반 사장인 졸리나가 철대위원장이 되어 전철연과의 연대를 책임졌듯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두리반에 옷을 입혔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공연을 했으며 작가들은 글을 쓰거나 낭독했고 영화를 하는 사람은 다큐를 만들거나 상영했다. 그래서 두리반의 531일은 하늘지붕음악회, 화요다큐멘터리상영회, 두리반 문학포럼, 불킨낭독회, 칼국수 음악회, 사막의 우물 두리반 등 다양한 정규 프로그램과 뉴타운컬쳐파티 같은 대규모 행사로 빼곡히 채워졌다. 


  “돈만 아는 저질들에게 우리의 노는 꼴을 보여주자!” 두리반을 가득 메웠던 이 외침은 분명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놀 순 없기에 노는 데도 수많은 결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두리반의 가장 강력한 힘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바로 중심이 없는 또는 중심이 여럿인 조직화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어느 에피소드를 들쳐보아도 두리반 투쟁을 지도하려고 했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철거민 부부조차도 두리반의 주인이 되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저 두리반 철거농성의 출발점으로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두리반의 결정기구인 두리반상회로 구현되었고, 투쟁의 성과인 협상 결과를 공개한 것(이는 철거민운동에서 이례적인 일이다)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두리반 투쟁은 투쟁에 결합한 모두가 당사자가 되는, ‘외부세력이 없는’ 투쟁이 되었다.  


  이처럼 두리반은 비장함 대신 발랄함을, 비밀결사 대신 솔직함을, 위계와 권위 대신 수평적인 연대를 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두리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논의하면서 함께 만들어나간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철거민 유채림과 두리반의 변신은 이전에 즐겨 사용되던 전통적인 의미의 ‘의식화’와 ‘조직화’로는 포착되지 않는 특이한 움직임이다. 그것은 자본에게 빼앗긴 존엄한 삶을 되찾고 자본의 리듬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살고자 하는 존재들이 벌이는 부단한 실험이며, 서로 묻고 답하고 배우며 가르치는 자기교육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은 운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는 훌륭한 실험 보고서이자 유용한 실전 가이드북이다. 전혀 새롭지 않은 새 정부가 들어서는 지금, 한층 더 까다롭고 치열한 대결이 예고되고 있는 지금, 이 책과 함께 칼국수 국물처럼 진하고 그 면발처럼 쫄깃한 싸움을 모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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