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쟁이다 (17)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옮긴이 후기 몇 해 전 웹서핑을 하다가 다큐멘터리 맑스 재장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유투브에서 본 맑스 재장전의 예고편은 레온 트로츠키와 칼 맑스를 대면시킨 애니메이션 도입부와 이어지는 대담자들의 면면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금융 위기’라는 말이 전지구적으로 어떤 위화감도 없이 통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프로젝트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것은 이 책의 번역을 맡고나서였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보고나서 이 책의 출판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다큐멘터리는 예고편이 준 기대감에 비해 무난하고 다소 평이하 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복잡다단한 사유의 결을 따라가기보다는 선명하게 각인될 수 있는 입장만을 ..
자본주의를 찢고 다른 세계를 창조하라 신생 2013년 가을호 권력에 맞서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했던 역사 속의 움직임들은 늘 권력 장악이라는 선결과제에 맞추어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이 선결과제는 최종목적지로 둔갑해버리기 일쑤였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권력을 일소하는 강경한 노선이든 선거라는 절차를 밟아 정권을 잡는 온건한 노선이든, 권력 장악은 항상 세계 변혁이 아니라 권력의 유지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역사상 세계 변혁을 목표로 내건 가장 광대한 실험이었던 사회주의가 생산력주의와 권위주의로 왜곡되었고, 이는 권력 장악 및 유지에 대한 반발과 함께 ‘권력 장악과 무관한’ 혹은 더 나아가 ‘권력 장악에 맞서는’ 세계 변혁에 대한 모색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반발과 모색은 권력 장악 없는 세계 변혁의 첫..
참담한, 고마운, 그리운, 실성한 531일의 기록 실천문학 2013년 봄호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는 두리반이라는 식당이 있다.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을 뜻하는, 식당 이름으로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싶은 정겨운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으로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기까지 두리반은 파란만장한 과정을 겪었다. 2005년 3월 동교동 삼거리에 자리를 잡았던 두리반은 공항철도역사 건설계획으로 땅값이 폭등하면서 벼랑으로 내몰렸다. 2008년에 시작된 법정싸움이 남긴 것은 이사비용 300만원이 전부였고, 이마저도 ‘험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순순히 받고 나가라는 겁박의 표시일 뿐이었다. 그러던 2009년, 아마도 홍대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는 날 중 하나일 성탄 전야에 두리반은 철거..
코뮤니즘이 돌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특이화 치료라고 불러야 한다. 비포 bifo | 은혜 옮김 1.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 감당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과 정치가들은 걱정한다. 그들은 그것을 위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난 세기에 ‘경제’를 습격하고서 더 강한 ‘자본주의’를 남겨두고 사라진 이전의 엄청난 위기처럼, 그것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나는 이번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생산력(전지구적 네트워크에서의 인지노동)의 힘(potency)과 성장패러다임이 양립불가능하다는 징후이다.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500년간 지속된 씨스템의 마지막 붕괴이다. 다음과 같은 풍경을 보라. 세계의 거대권력들은 금융기관들을 구제하려고 한다. 그러나 금융의 붕괴는 산업씨스템에 영향을 주었다. 수요는 떨어..
점령자, 해적, 그리고 기본소득 : 공통적인 것의 재전유를 위한 우리의 무기 직업운동가가 사라진 시대의 운동촛불봉기가 한풀 꺾이면서 ‘촛불사람들’과 함께 앞으로의 활동방향을 모색하다가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반가움과 의구심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질문들. 그 반응은 기본소득을 ‘전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를 좋은 것으로 인식시키려 노력하다보면, 그것이 어느 틈엔가 만능열쇠로 둔갑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기만 하면’ 식의 사고방식을 심어주게 될까 두려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이 짓을 그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짓을 더 잘 하기 위해서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순간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심광현의 「기본소득,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의 선순환의 고리」에 대한 토론문 “나는 자본주의다. 나의 사회에서는 비경제적으로 생산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게으르다는 딱지를 붙인다.” @_Capitalism_ 심광현의 「기본소득, 노동(운동)과 문화(운동)의 선순환의 고리」는 “한국사회는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발전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이 완성되는 가운데 자동화 기술의 기하급수적 가속화가 노동을 잠식하여 비정규직위 규모가 정규직을 능가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면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달려 왔”으며, “이런 격랑에 대해 수세적 대응에 머물러 왔던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도 당장 “근본적인 이행”을 고민하지 않..
삶정치적 기본소득을 위하여 “우리의 자연상태는 실로 다중의 공통적 네트워크 속에서 창조되는 것이다.” - 네그리․하트 디킨즈의 소설 『어려운 시절』(1853)에는 ‘숫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소녀가 등장한다. 씨씨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사실’을 가르치는 데 혈안이 된 학교에서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는 ‘지진아’이다. 씨씨는 ‘국가의(national)’ 부를 ‘자연의(natural)’ 부라고 잘못 말해놓고 “같은 얘기 아닌가요”라고 천진하게 묻는다. 그는 “국가에 오천만 파운드의 돈이 있다면 부유한 나라인가”라는 선생의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해 핀잔을 듣는데, 그렇게 대답한 이유는 “누가 돈을 갖고 있는지, 그 중 얼마라도 제 돈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면 부유한 나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